야구 이야기/레전드 선수 22

[해태 타이거즈] 이순철

1980년대와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 붙박이 1번 타자 이순철 선수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 도루왕 김일권 선수에 이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해태타이거즈의 왕조를 이룩했던 전설의 1번 타자입니다. 당시 해태타이거즈의 붙박이 1번 타자로 활약, 우승을 8번이나 이끌었습니다. 활약 당시 세 번의 도루왕, 네 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호타준족 선수였습니다. 특이할만한 것은 외야, 내야 모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입니다. 중견수 수비에 있어서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순철 선수는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습니다. 입단 당시 타율 0.304, 12 홈런과 31개의 도루를 이룩하였습니다. 선동렬 선수나 이종범 선수도 수상하지 못한, 해태 타이거즈 사상 최초의 신인왕을 ..

[빙그레 이글스]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의 연습생 신화 장종훈 선수입니다.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로 이어지는, 이글스 군단의 원클럽맨 장종훈 선수입니다. 이만수 선수가 1980년대의 대표 홈런타자였고, 장종훈 선수는 1990년대의 대표 홈런타자였습니다. 당시 빙그레 이글스는 장종훈 선수를 중심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구축했습니다. 장종훈 선수의 타격은 공 중심이 정확히 맞추는 타구가 많았습니다. 공을 쪼갤 듯이 때리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담장 밖으로 홈런을 마구마구 쳤습니다. 한 시즌 40 홈런을 최초로 깬 선수였지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장종훈 선수의 프로시작은 연습생이었습니다. 장종훈 선수는 가능성 있는 대형 내야수 정도의 평가로 대학 진학도, 프로 구단의 호출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다행히 연고지팀이었던 빙그레 이..

[해태 타이거즈] 김봉연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해태 타이거즈 김봉연 선수입니다. 김봉연 선수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 해태 타이거즈의 4번 타자입니다. 해태 타이거즈의 초대 주장을 맡았고, 당시 22개의 홈런으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의 홈런왕을 차지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 해태 타이거즈 타선은 엄청 막강했습니다. 1번 타자 김일권, 2번 타자 차영화, 3번 타자 김성한, 4번 타자 김봉연, 5번 타자 김준환, 6번 타자 김종모 선수였습니다. 이 타자들 모두 김 씨라서 김씨 왕조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두 장타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김성한-김봉연-김준환으로 이어지는 클린업트리오는 가희 엄청난 장타 생산능력을 보였습니다. 김봉연 선수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 초대 홈런왕을 차지했습니다. 홈런 개수도 대단..

[롯데 자이언츠] 염종석

많은 롯데 자이언츠 팬들이 기억하는 1990년대 초반의 안경 에이스 염종석 선수입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마운드의 핵심 선발투수입니다. 1992년에 고졸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습니다. 그 해 염종석 선수의 맹활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는 두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초 안경 에이스는 최동원 선수이고, 염종석 선수는 최동원 선수 이후 롯데 자이언츠의 금테안경 우완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데뷔 시즌에 투수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였고, 평균 자책점 타이틀까지 차지했습니다. 같은 해 포스트시즌에서 4승 1세이브의 놀라운 기록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많은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 당시 최동원 선수를 연..

[현대 유니콘스] 박재홍

우리나라 선수이지만 리틀 쿠바라는 별명의 박재홍 선수입니다. 박재홍 선수는 1996년 현대유니콘스에 입단했습니다. 데뷔 첫해에 홈런왕, 타점왕,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로 30 홈런-30 도루 클럽에 가입합니다. 그리고 만장일치 신인왕이 올랐습니다. 1996년에 각 언론에서는 박재홍 선수를 언급할 때마다 괴물신인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당시 KBS 9시 스포츠 뉴스 시간에 시작하는 알림이 나오고 아나운서가 인사하기 이전에 박재홍 선수의 영상이 나갔을 정도였습니다. 그 만큼 박재홍 선수의 30-30 클럽은 대한민국 역사상 대단한, 최초의 기록이었습니다. 데뷔해에 신인왕과 동시에 MVP 수상까지도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구대성 선수의 성적이 더 임팩트가 높다는 판단으로 MVP 까지는 수상하지 못했..

[OB베어스] 최일언

OB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투수 최일언 선수입니다. 최일언 선수는 OB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선수입니다. 은퇴 이후에 친정팀 코치뿐만 아니라 여러 팀에서 투수 코치를 맡았고,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투수 코치로도 활약했습니다. 그만큼 유능한 코치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84년 OB베어스는 김일융 투수를 놓쳐서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김일융 선수는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하였습니다.) 당시 OB베어스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은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최일언 투수에 많은 애정이 있었습니다. 최일언 선수가 OB베어스에 입단했을 때 김성근 감독은 최일언 선수를 "최일언선수는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정통파로 피칭을 배운 선수다"라고 치켜세웠다고 합니다. 최일언 선수는 기대대로 입단 첫해부터 167.2 이닝..

[삼성 라이온즈] 박승호

국보 투수 선동렬 선수에게 첫 홈런을 쳤던, 삼성라이온즈 왼손 거포 박승호 선수입니다. 삼성라이온즈의 왼손 거포라고 하면 저는 단연 박승호 선수를 뽑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이승엽 선수, 양준혁 선수도 있었지만..) 박승호 선수는 먼저 군 소속의 상무 야구단에 입단했습니다. 군 복무 마친 후 1983년에 신인 드래프트를 통하여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합니다. 프로 시절에서는 1루수와 지명타자를 주로 맡았습니다. 1990년에는 지명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07, 75타점, 홈런 20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해 골든글러브를 수상, 박승호 선수 커리어 하이의 해를 보냈습니다. 1990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즌에서는 다소 저조한 성적을 보였지만 프로 시절에 삼성라이온즈가 필요할 때의 한방을 잘 쳐..

[빙그레 이글스] 송진우

회장님 송진우 선수입니다.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의 투수입니다. 현역 시절의 등번호는 21번, 대한민국 프로야구 통산 유일한 200승 투수입니다. 역대 최다승,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좌완 정통파 투수이었습니다. 뛰어난 제구로 유명하였고요. 빙그레 이글스 시절에 구속 140 후반대에 이르는 직구로 좌완 파이어볼러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후 이상훈과 구대성 같은 선수들이 등장했지만 그 이전까지 거의 국내 프로야구의 원톱 좌완투수였습니다. 빙그레 이글스 입단 당시부터 선발-중간계투-마무리의 모든 보직을 넘나드는 혹사를 당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1996년 이후로 구속이 감퇴되었습니다. 그 후 140 km 대 속구를 구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클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OB 베어스] 박철순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불사조 박철순 선수입니다. 프로야구 단일시즌 22승에 빛나는 박철순 투수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부터 활약을 하였고, OB베어스-두산베어스로 이어지는 팀의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였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을 빛낸 선수로 OB베어스의 첫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박철순 투수가 기록한 단일 시즌 22연승은 백인천 선수의 단일 시즌 타율 0.412와 더불어 현재까지의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깨지지 않는 대기록입니다. 베어스의 올드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박철순을 기억하는 팬들의 숫자는 당연히 줄어들고 있지만 베어스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슈퍼스타입니다. 사실 박철순 선수의 성적은 프로야구 원년에만 화려했습니다. 다른 시즌에서는 보통 이하..

[MBC 청룡] 김재박

그라운드의 여우, MBC 청룡 김재박 선수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대 최고의 유격수입니다. 공격, 수비, 주루 삼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였습니다. (그 후 류중일-이종범-빅진만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유격수 계보의 선두 선수였습니다.) 80년대 야구를 보신 어르신들은 김재박 이후로 그만한 유격수가 없다고도 하십니다. 김재박 선수는 실업야구 시절에 최동원, 이선희 선수와 함께 강한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때문에 1982년 MBC 청룡은 OB 베어스에 박철순 선수를 넘기면서까지 김재박 선수를 1차 지명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원칙적으로 구단의 연고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모든 선수를 지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재박 선수는 고등학교만 제외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모두 대구, 경북 지역에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