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야기/레전드 선수 22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영원한 헐크 이만수 선수입니다. 이만수 선수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단하였습니다. 삼성라이온즈에서만 16 시즌을 뛴 원 클럽맨입니다. 원년 멤버들 중에서 가장 오래 뛰었던 선수입니다. 별명은 헐크, 등번호 22번, 삼성라이온즈 영구결번 삼성에서 유일하게 22번을 달았던 선수입니다. 삼성에서 영구결번인 10번(양준혁)과 36번(이승엽)은 다른 선수들이 한번 달았지만, 22번은 이만수 선수만이 달았던 순수 영구결번입니다. 대한민국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 이만수 선수는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의 주인공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과의 개막전에서 4번 타자 포수로 출전하였습니다. 1회에 2루타를 치며 타..

[해태 타이거즈] 이강철

전 해태 타이거즈 잠수함 투수 이강철 선수입니다. 현재 투수 출신의 감독, KT 위즈 감독 이강철 선수입니다. 해태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기아타이거즈에서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은퇴 후 여러 팀에서 코치 생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는 KT위즈의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조범현 포수와 함께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한 감독입니다. 해태 타이거즈 왕조 시절에서는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96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뭐쥐었습니다. 2009년에서는 기아타이거즈 코치로 10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18년 선동열 감독 아래에 투수코치로써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견인하였습니다. 2021년에는 KT위즈 감독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이른바 강철 매직으로 KT위즈 첫 우..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박정태 선수입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당대 최고의 2루수였습니다. 근성으로 상징되는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롯데뿐만 아니라 전체 야구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동래고등학교와 경성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1차로 롯데자이언츠에 지명받아 입단하였습니다. 1990년대 최고의 2루수로 활약했습니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의 프로선수 생활 모두를 오직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생활했습니다. 은퇴 후, 코치 생활도 롯데에서만 하였습니다. 1991년의 롯데 자이언츠 개막경기에서 1번 타자로 프로 첫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 상황에서 중전안타로 박정태 선수는 혜성처럼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타율 0.285와 홈런 14개, 74타점의 준수한..

[삼성 라이온즈] 장효조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입니다. 타격의 달인, 삼성라이온즈 장효조 선수입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대한민국에서 타격의 대표 선수였습니다.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아마추어 시절에서는 장타력도 출중했습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는 4번 타자로 출전했습니다. 장효조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프로에 와서는 알루미늄 배트 대신 나무 배트를 사용하면서 장타력을 줄었습니다. 하지만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타율 1위에 안타 117개나 처내는 등 타격의 기록을 쏟아냈습니다. 1983년 데뷔시즌의 장효조 선수는 타율 0.369에 홈런도 18개나 쳤습니다. 그리고 출루율은 0.475, 장타율 0.618, OPS는 무려 1.093으로 ..

[SK 와이번스] 박경완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초 영구결번 인천야구의 상징 박경완 선수입니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프로야구 데뷔하였고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2013년까지 SK와이번스에서 활동하였습니다. SK 와이번스의 왕조시절을 이끈 선수였고 공수에 걸쳐 완성된 포수의 대표 주자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박경완 선수의 은퇴 시점 기준으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리그 최장 시즌 1군 경기에 출장한 선수였고 통산 포수 WAR 1위이자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포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 인천 야구에서는 팬들에게 상징적인 선수로 여겨집니다. 박경완 선수가 활약할 당시 그는 리그 최정상급 포수 였습니다. 포수로서의 기본기인 블로킹 능력, 포구 능력, 도루 저지 능력을 위한 강한 어깨는 물론 장타력까지 모두 갖추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대한민국 대표하는 투수 양대 산맥 중의 한 선수 최동원 선수입니다. 선수 시절에 국보 투수 선동열 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투수였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야구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사망 후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에서 최초 영구결번, 현재까지도 2개뿐인 영구 결번의 주인공입니다. 사실 아마추어 시절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혹사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에 데뷔하여 대한민국 리그 초창기를 대표하는 투수 중의 한 명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활약을 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회자되는 한국시리즈 4승의 대기록은 달..

[해태타이거즈] 선동열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 선동열 선수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주니치 드래곤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고,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기아타이거즈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습니다. 해태타이거즈 소속 당시 등번호 18번은 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별명으로는 국보, 무등산 폭격기 등이 있습니다. 해태타이거즈 시절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통산 3번이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습니다. 선발투수로 두 번이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고, 마무리 투수로는 한번 기록하였습니다. 1995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패스트볼 155km을 기록했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리그 ..

[해태 타이거즈]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소속 해결사 한대화 선수입니다. 1983년 OB 베어스에 입단하여 프로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즌 개막전에서 3점 홈런을 쏘아 올려 3점 홈런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었습니다. 하지만 데뷔년도에는 타율 0.272와 홈런 5개로 그저 그런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1984년과 1985년에는 타율이 더 떨어져서 팀에서 자리가 애매모호해졌습니다. 하지만 OB베어스에서 해태타이거즈로 이적함으로써 한대화 선수의 야구 인생이 활짝 피게 되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입단 후 OB 베어스 있을 때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의 왕조 시절에 주전 3루수로 활약했습니다.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였고, 해태 시절 초반에는 2루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루수로 자리 잡으면서 타격이 살아나고 ..

[두산 베어스] 김동주 (두목곰)

진정한 두목곰, 두산 베어스 김동주 선수입니다. 전 OB베어스, 두산 베어스의 3루수, 국가대표 4번 타자 김동주 선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OB베어스, 두산 베어스 역대 타자 중 통산 최다 타석, 최다 타수, 최다 안타, 최다 2루타, 최다 홈런, 최다 타점, 최다 득점, 최다 볼넷, 최다 사구 등 모두 9개 부분에서 최다 기록을 보유한 원 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에서 단 4명뿐의 통산 슬래시 라인 3-4-5의 한 명입니다. (다른 선수는 양준혁, 최형우, 김태균 선수입니다.) 컨택과 파워 둘 다 리그 최상위급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른바 우동수 트리오(타이론 우즈, 김동주, 심정수)에서 파워는 쳐졌지만 정교한 타격과 타점을 쓸어 담는 컨택과 적절한 파워로 당시 리그 최상급..

[MBC 청룡] 백인천

대한민국 프로야구 원년멤버, 원년 최고령 타자, 불멸의 기록 4할 타자 백인천 선수입니다. 1982년 대한민국에 프로야구가 생겼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나이 41세, 호적상으로 40세 백인천 선수가 프로야구(MBC 청룡)에 왔습니다. (백인천 선수는 우리나라에 오기 이전에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40세가 되어 우리나라에 온 백인천 선수는 국내 프로야구 첫 경기부터 맹타를 쏟아냈습니다. 원년 개막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했습니다. 6회말 솔로 홈런을 기록했고, 연장까지 이어진 승부에서 10회말 고의사구로 나간 뒤, 이종도 선수의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홈으로 들어왔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타율 0.412, 출루율 0.502를 달성했습니다. 당시 경기는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