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야기 81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영원한 헐크 이만수 선수입니다. 이만수 선수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단하였습니다. 삼성라이온즈에서만 16 시즌을 뛴 원 클럽맨입니다. 원년 멤버들 중에서 가장 오래 뛰었던 선수입니다. 별명은 헐크, 등번호 22번, 삼성라이온즈 영구결번 삼성에서 유일하게 22번을 달았던 선수입니다. 삼성에서 영구결번인 10번(양준혁)과 36번(이승엽)은 다른 선수들이 한번 달았지만, 22번은 이만수 선수만이 달았던 순수 영구결번입니다. 대한민국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 이만수 선수는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1호 안타, 1호 타점, 1호 홈런의 주인공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MBC 청룡과의 개막전에서 4번 타자 포수로 출전하였습니다. 1회에 2루타를 치며 타..

[해태 타이거즈] 이강철

전 해태 타이거즈 잠수함 투수 이강철 선수입니다. 현재 투수 출신의 감독, KT 위즈 감독 이강철 선수입니다. 해태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기아타이거즈에서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은퇴 후 여러 팀에서 코치 생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는 KT위즈의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조범현 포수와 함께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한 감독입니다. 해태 타이거즈 왕조 시절에서는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96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뭐쥐었습니다. 2009년에서는 기아타이거즈 코치로 10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18년 선동열 감독 아래에 투수코치로써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견인하였습니다. 2021년에는 KT위즈 감독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이른바 강철 매직으로 KT위즈 첫 우..

야구 공식 보고서에 대한 규칙

(본 게시글은 메이저리그 야구 규칙을 참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실제 규칙과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전 게시글은 야구 공식 보고서를 설명하였습니다. 본 게시글에서는 야구 공식 보고서에 대한 추가적인 규칙을 설명합니다. 공식 점수 보고서를 작성할 때 공식 기록원은 각 선수의 이름과 수비 위치 또는 위치를 선수가 쳤거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 쳤을 순서대로 나열해야 합니다. 1. 다른 야수와 포지션을 바꾸지 않고 특정 타자를 위해 다른 자리에 배치된 경우 공식 기록원은 이를 새로운 위치로 기재해서는 안 됩니다 (예: 2루수가 외야로 나가 4인 외야수를 구성하거나 3루수가 타석으로 이동하는 경우, 유격수와 2루수 사이의 위치) 2. 공식 기록원은 교체 타자 또는 교체 주자로 게임에 들어온 ..

야구 공식 점수 보고서

(본 글은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 규칙을 참조로 작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규칙과 맞지 않는 것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식 채점원이 작성한 공식 점수 보고서는 리그에서 규정한 양식으로 다음을 포함해야 합니다. 각 타자와 주자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a. 타석이 없는 경우를 제외한 타수 (1) 타석이 없는 경우를 제외한 타수 (A) 희생번트나 희생 플라이를 친 경우 (B) 4개의 콜 된 공으로 1루 나가는 경우 (C) 투구에 맞은 경우 (D) 주루 방해로 인해 1루로 나가는 경우 (2) 득점한 득점 수 (3) 안타 수 (4) 타점 수 (5) 2루타 (6) 3루타 (7) 홈런 (8) 안타에 대한 총 루 (9) 도루 (10) 희생 번트 (11) 희생 플라이 (12) 총 베이스 수 (13) 공에 ..

야구 공식 기록원

(본 게시글은 메이저리그 공식 문서를 참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규칙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식 기록원의 일반 규칙 커미셔너실은 경기와 관련하여, 경기에 대해 공식 기록원을 임명해야 합니다. 공식 기록원은 홈 팀이 지정하는 영구적으로 배정된 좌석, 리그 공식 데이터 수집 직원 옆 좌석의 프레스 박스 위치에서 경기를 관찰해야 합니다. 공식 기록원은 타자의 1루 진루가 안타 ​​또는 실책의 결과인지 여부와 같은 판단과 관련된 규칙 적용에 관한 모든 결정을 내릴 단독 권한을 가집니다. 공식 기록원은 그러한 결정을 먼저 리그 공식 데이터 수집 직원에게 전달하고, 두 번째로 기자석과 방송 부스에 있는 스태프와 미디어 담당자에게 수신호나 기자석 확성기를 통해 전달하고 그러한 결정..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 박정태 선수입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당대 최고의 2루수였습니다. 근성으로 상징되는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롯데뿐만 아니라 전체 야구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동래고등학교와 경성대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1차로 롯데자이언츠에 지명받아 입단하였습니다. 1990년대 최고의 2루수로 활약했습니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의 프로선수 생활 모두를 오직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생활했습니다. 은퇴 후, 코치 생활도 롯데에서만 하였습니다. 1991년의 롯데 자이언츠 개막경기에서 1번 타자로 프로 첫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 상황에서 중전안타로 박정태 선수는 혜성처럼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타율 0.285와 홈런 14개, 74타점의 준수한..

[삼성 라이온즈] 장효조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입니다. 타격의 달인, 삼성라이온즈 장효조 선수입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대한민국에서 타격의 대표 선수였습니다.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는 아마추어 시절에서는 장타력도 출중했습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는 4번 타자로 출전했습니다. 장효조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프로에 와서는 알루미늄 배트 대신 나무 배트를 사용하면서 장타력을 줄었습니다. 하지만 프로 데뷔 첫 시즌부터 타율 1위에 안타 117개나 처내는 등 타격의 기록을 쏟아냈습니다. 1983년 데뷔시즌의 장효조 선수는 타율 0.369에 홈런도 18개나 쳤습니다. 그리고 출루율은 0.475, 장타율 0.618, OPS는 무려 1.093으로 ..

[SK 와이번스] 박경완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초 영구결번 인천야구의 상징 박경완 선수입니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프로야구 데뷔하였고 현대 유니콘스를 거쳐 2013년까지 SK와이번스에서 활동하였습니다. SK 와이번스의 왕조시절을 이끈 선수였고 공수에 걸쳐 완성된 포수의 대표 주자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박경완 선수의 은퇴 시점 기준으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리그 최장 시즌 1군 경기에 출장한 선수였고 통산 포수 WAR 1위이자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포함)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 인천 야구에서는 팬들에게 상징적인 선수로 여겨집니다. 박경완 선수가 활약할 당시 그는 리그 최정상급 포수 였습니다. 포수로서의 기본기인 블로킹 능력, 포구 능력, 도루 저지 능력을 위한 강한 어깨는 물론 장타력까지 모두 갖추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대한민국 대표하는 투수 양대 산맥 중의 한 선수 최동원 선수입니다. 선수 시절에 국보 투수 선동열 선수와 함께,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투수였습니다. 롯데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야구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사망 후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에서 최초 영구결번, 현재까지도 2개뿐인 영구 결번의 주인공입니다. 사실 아마추어 시절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혹사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에 데뷔하여 대한민국 리그 초창기를 대표하는 투수 중의 한 명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활약을 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회자되는 한국시리즈 4승의 대기록은 달..

[해태타이거즈] 선동열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 선동열 선수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투수로 활약했습니다. 이후 주니치 드래곤즈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고,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기아타이거즈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습니다. 해태타이거즈 소속 당시 등번호 18번은 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별명으로는 국보, 무등산 폭격기 등이 있습니다. 해태타이거즈 시절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통산 3번이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습니다. 선발투수로 두 번이나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고, 마무리 투수로는 한번 기록하였습니다. 1995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사상 패스트볼 155km을 기록했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리그 ..